시편 78편

2006/09/24 03:23

일요일 새벽 3시. 우리 과 환자는 그리 안 좋은 환자는 없는데, 다른 과 환자들 때문에 새벽 3시까지 못 자고 있다. 주로 effusion이나 pneumothorax로 숨 찬 사람들, 그리고 조금 전에는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사고가 나서 양 측에 hemopneumothorax가 생긴 사람까지.

흉부외과를 하면서 편한 점은, 환자 보호자에 대한 컨트롤이 쉽다는 점이다. 일반인들은 이 '컨트롤'이라는 단어를 본능적으로 싫어 하겠지만, 달리 바꾸어 생각하면 학교 선생님이 아이들을 '다루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면 된다. 교사는 학생을 인격체로 존중해야 하지만, 반면 아이를 바르게 교육하기 위해서는 격려할 것은 격려하고 혼 낼것은 혼내야 한다. 의사와 환자가 아무리 동등한 입장이라도 최소 의사는 환자에게 있어 조언자 이상의 위치에 서야 하고, 조언이 먹히기 위해서는 '다룸의 기술'이 필요하다. 더욱이 흉부외과와 같이 생명에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질병을 다루는 과에서는, 조언자의 관계가 아니라, 환자는 의사에게 일방적으로 의존해야 한다. 그래서인지 흉부외과 의사로서 환자에게 단호하게 명령하는 것, 그리고 지시 사항이 행해지지 않았을때 강하게 경고하는 등의 행위가 다른과에서는 있을 수 없지만 흉부외과에서는 가능하다.

허나 환자들에게 가장 인상적으로 보일 수 있는 것은, 의사가 언제나 환자 근처에 있다는 안도감을 주는 것이다. 내가 환자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첫째가 식사 하셨어요? 고 둘째가 언제 퇴근하세요? 이다. 밤 12시에도 병동에서 보이고, 새벽 2시에 중환자실에 보이고, 새벽 6시에 병동에 다시 드레싱하러 나오면 환자들은 꼭 집에 언제 가냐고 묻는다. 환자들은 의사가 집에 가지 않고 계속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고 고마워 한다. 그리고 사소한 불편사항을 요구하고 빨리 해결되지 않아도, 선생님 바쁘실텐데 시간되면 이것 좀 해 주세요, 라고 말하는 환자가 대부분이다. (그렇다고 사소한 문제들을 뭉개고 안 본다는게 아니라)

사실 환자를 치료하는데 있어 같은 질환이라면 약이 크게 다를 것도 없고 치료의 원칙이 다를 것도 없다. 수술이 잘 되고 못 되고의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 요즘들어 더 느끼는건, 환자들에게 의사가 주어야 하는 것 중 중요한 것은 자신이 치료 받고 있다는 느낌, 의사가 자신을 생각하고 있다는 느낌, 나는 낫고 있다는 느낌이다. 의사가 어느 정도까지 도와주면 환자는 스스로 나아가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중요한 것이 바로 이런 well-being sensation 이 아닐까. 개인적으로는 웃는 얼굴로 자상하게 설명하고 손 잡아 주고 하는 행동들이 낯설고 익숙지가 않아서, 말도 무뚝뚝하고 바빠서 몇 마디 안 하고 쉭 지나가도 이 사람들이 나를 정말 생각하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주는 것이, 마치 엄한 아버지 스타일이 더 어울리고 편하다.



나는 기독교 신자는 아니지만, 오늘 한 환자가 조그만 쪽지에 시편 78편의 일부를 적어 주었는데 자꾸만 마음에 와 닿는다. '또 그 종 다윗을 택하시되 양의 우리에서 취하시며, 젖양을 지키는 중에서 저희를 이끄사 그 백성인 야곱, 그 기업인 이스라엘을 기르게 하셨더니, 이에 저가 그 마음의 성실함으로 기르고 그 손의 공교함으로 지도하였도다'

수술 후 수술 부위에 문제가 생겨 아침 저녁으로 드레싱을 하는 분이었는데, 새벽에는 시간을 맞출 수 있어도 밤에는 시간이 나질 않아 밤 12시에 자는 환자를 깨워가며 2주째 드레싱을 하고 있다. Wound proem이 생기면 어쨌든 의사로서 도의적인 책임을 느끼고 미안해 해야 하는데 되려 이런 얘기를 해 주니, 내가 이 환자에게 well-being sensation을 주고 있기는 하구나 하는 안도가 들기도 하지만, 또 한 편으로는 미안할 따름이다. 다윗의 성실함을 높이 여겨 은혜를 베풀었다는 얘기, 의사로서 더 성실함을 가지라는 격려일텐데, 참으로 마음 한 구석이 움찔해질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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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응급실 보호자

    Tracked from Life Is Always Emergency  삭제

    응급의학과를 하면서 어려운 점의 하나는 환자 보호자에 대한 컨트롤이 어렵다는 것이다.응급실에 오는 환자는 보통 자기가 응급실에 올 것을 예측하지 못한다. 더군다나 응급실에 가서 만나

    2006/09/24 23:34
  1. 자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06/09/25 19:07
    라뽀라고 하죠? 요즘 정신과 수업이 틈틈히 있는데, 정신과에서는 이 rapport를 아주 중시 여기시더군요. 다른 과도 마찬가지겠지만, 워낙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고 촌각을 다투다보니 어려워지는게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이런 고민을 계속 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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