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가지 생각들
2008/07/30 23:21
- 요즘 수술이 너무 많다. 아침부터 수술방 들어가서 마지막 수술이 끝나면 저녁 7시가 넘고, 저녁 회진을 돌고나면 밤 10시가 훌쩍 넘어간다. 하지만 차라리 바쁜게 마음이 편하다.
- 4월말에 그리스를 다녀와서, 사실 이번 여름 휴가에 대해서는 별 계획이 없고, 지방에 쉬엄쉬엄 내려갔다올까, 하는 정도의 계획만 있다. 불경기다 고유가다 해서 다들 휴가 계획없는 걸로 생각했는데, 요즘 면세점이 동대문 시장보다 더 붐빈다는 사실에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뿐이다.
- 며칠 전 수술이 없던 날 잠시 선생님 한 분과 본교에 다녀왔는데, 밖이 이렇게 더울지는 상상도 못했다. 더운 여름 늘 병원에 있다보니 열대야니 폭염이니 전혀 모르고 지내왔다. 둘 다 복날의 개 처럼 헐떡이다가 병원으로 들어오니 살 것 같았지만, 시원해서 좋은 것보다는 이렇게 병원을 시원하게 하려면 과연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냉방비로 들어가야 하는건지 걱정스러웠다.
- 내가 아무리 힘들고 우울하다고해도, 엄살일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수술한 환자에게, 수술 결과 폐암 3기입니다. 항암치료를 받아야 하고, 그래도 5년 평균 생존율을 얼마입니다.. 라고 말하면, 그걸 듣는 환자의 마음을 과연 내 마음과 비교할 수 있을까. 여튼 난 아직도 비교적 건강하고, 실제적으로 잃은 것은 아무것도 없지 않느냔 말이다. 비록 4월 이전으로 돌아간 것이지만.
- 그 사람이 얼마나 성숙하고 좋은 사람이었냐의 문제가 아니다. 그 사람만큼 날 순수하게 좋아해줄 사람이 앞으로 또 있을까의 문제다. 나는 내 상실감이 자기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길 바란다.
- 어쨌거나 난 흉부외과 의사이고, 앞으로 특별한 일이 없는한 이 직업으로 살게 될 것이다. 그리고 흉부외과의사가 되기 위해 10년이 넘는 시간을 보내왔다. 내 존재의 본질은 흉부외과의사라는 점에서 시작한다. 직업이란 그렇다. 한 순간에 직업을 바꾸거나 그만 둔다는 것은, 과연 어떤 것일까. 내가 과연 그걸 이해할 수 있을까.
- 이를테면 치료가 되지 않을 병을 앓는 부인을 간병하는 중년의 남성을 볼 때 마다, 그 남자의 직업이 무엇일지 궁금해지곤 한다. 우리 사회 현실에서 중년의 남성이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를 생각해보면, 그 간병이라는 것이 보통 애정과 사랑이 아니고서는 하기 어려운 것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럴때마다 난 그들이 존경스럽고 내 마음도 따뜻해지는 것만 같아 고맙게 느껴진다.
- 난 여지껏 내가 살아온 부분 중에 비도덕적이거나 비윤리적인 부분은 그리 많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종교를 가진 비도덕적인 사람'들보다 내가 더 바르게 산다고 말할 수 있다. 여지껏 종교를 가지지 않았지만 갈 수록 내가 생각하는 도덕과 윤리의 경계와 기준은 모호해지고, 이제는 내 도덕과 윤리를 넘어서는 종교를 가져야하지 않을까 싶다. 종교라는 것이, 이제 믿어봐야지, 해서 갖게 되는 것은 분명 아니다. 참 우스운 대목인데, 그래도 난 갈수록 약해지고, 갈수록 시험받는 일이 생기고, 갈수록 위선적으로 변하고만 있다. 교회를 다니면, 좀 더 착해질 수 있을까.
- 그러고보니 올해는 무엇 하나 뚜렷하게 한 것이 없는 것만 같다.
'내 도덕과 윤리를 넘어서는 종교'의 테두리 안 쪽에 있어도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은 저도 요즘 종종 해요. 제 몸의 변화와 심리상태가 선택과 판단에 미치는 영향이 점점 더 커지는 것 같아서요...
지난주 선배를 따라 교회를 다녀왔는데, 목사님 설교를 듣고 있는것만으로도 도움이 되더군요. 한주간 화가 나고 스스로 약해지는 상황이 많았는데, 그때마다 마음을 다잡을 화두같은걸 받아서..
여튼 종교를 갖는 것도 나름대로 사는데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블로그에 글을 남기는게 너무 오랜만이네요.^^ 그동안 저도 사건 사고가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사고는 교통사고였어요. 차는 폐차 수준이 되어버린 큰 사고였으나 다행히 저는 외상이 전혀 없고 살점 하나 긁히지 않았답니다. 물론 사고 후유증은 있어서 치료는 받아야 했지만. 올 여름 병원에서의 생활을 경험해서인지 공감이 되네요, 병원에서의 삶. 물론 의사와 환자는 또 다르겠지만.
크게 안 다쳐셨다니 참 다행이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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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는 말이죠 :-)
병원밖에 나와있으니,,환자,병원,병,,이런것들이
너무나 멀게느껴진다. 나의 삶의 90%였던 것들이
순간 나랑은 너무나 별개의 것들로...
엄마가 되고보니, 병원생활이 얼마나 편한것임을 알게되더라..
그래도 병원생활은 힘들고 바쁘게 돌아가고,,치열하기는 하지만,
결국은 남(환자들의)의 삶이자나.우리가 잠시 그 삶에 관여한것이긴 하지만..
한아기의 엄마로서 너무나 큰 책임감이 덜컥 부여되버린
삶이 한편으로는 부담스럽기도 하네..^^
물론 아가는 너무 구엽고 사랑스럽다~
의사들은 사람들의 삶에 많이 관여되어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그런 것들은 피상적일지도 몰라.
모성을 가진 여자의 모습은 참 아름다워보이더라. 네가 애기 엄마라는게 잘 믿겨지지는 않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