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 모자

2009/07/31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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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중환자실 수간호사로부터 작은 선물을 받았다. 선물이라고 하기도 뭐하지만, 여튼 수술방에서 쓰라고 두건 형태의 surgical cap을 두 개 받았다. 일반적인 경우 일회용 수술방 모자를 쓰거나, 땀을 많이 흘리는 사람은 일회용 대신에 천모자를 쓰곤 하는데 그 색은 대게 수술복 색에 맞춰 녹색이나 하늘색이다. 가끔 외국 의학드라마를 보면 외과의사들이 자신만의 개성있는 색과 모양의 모자를 쓰는 모습이 나오고, 그런 의미에서 이런 모자들을 만들어파는 모양이다. 그러나 받으니 고맙기는 하지만, 선뜻 이 모자를 쓰고 수술방에 들어갈 엄두가 나질 않았다.


지금 있는 병원의 선생님이 일전에 마음에 새겨 둘 만한 얘기를 해 주신적이 있다. '앞에 어시스트를 누구를 세우냐에 따라서 수술 결과가 틀려진다면, 그건 오페레이터로서 자기 수술을 하는 것이 아니야. 누구를 세우고 하던 늘 똑같이 잘 할 수 있어야 자기 수술이라고 할 수 있는거지.' Operator로서 1st assistant로 전문의의 도움을 받느냐, 인턴을 데리고 수술을 하냐, 아님 학생을 데리고 수술을 하냐에 따라서 수술 결과가 틀려지면 안 된다는 것이다.


어제 중증근무력증 환자의 흉선절제술을 하는데, 최근 며칠 사이 인력도 부족해 어쩌다보니 인턴과 함께 수술을 하게 되었다. 만약 경험이 많은 수술방전문간호사와 함께 수술을 했다면 마치 뛰어난 네비게이션을 켜 놓고 수술을 하는 느낌을 받았겠지만, 인턴과 함께 수술을 하니 아주 작고 사소한 술기마저도 신경을 쓸 수 밖에 없었다. 어떻게 traction을 해야 하는지, 실은 어떻게 잘라야 하는지, 어딜 잡고 보여줘야하는지 일일이 다 말해주면서. 그렇게 두 시간 정도를 skin to skin으로 하고 나니 어제 저녁에는 너무 피곤했다. 그리고나서도 수술 결과 중 좀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 있어 하루 종일 마음이 좋지 않았다.


우리나라 정서에서 이제 막 수술을 배우고 있는 1년차 전문의로서 저런 화려한 모자를 쓰면, 수술도 아직 잘 못하면서 겉멋만 들었다는 얘기를 들을런지도 모르겠다. 아니, 남들이 뭐라하던지간에 나 스스로 나에 대해서 그렇게 생각하게 될 것 같다. 인턴이랑 수술하면서도 힘들어하면서 왜 겉멋만 들었는지 말이다. 왜 오늘 선물받은 모자를 쓰고 들어가지 않았냐는 중환자실 간호사들의 질문에, 어 한 20년쯤 지나면 떳떳하게 그 모자를 쓰고 수술방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지금은 아니에요. 라고 대답했다.

근데 20년 후면 모자를 안 쓰고 수술해도 되는 세상이 오지 않을까?






2009/07/31 21:44 2009/07/31 21:44
by 박성용

하트

2009/07/12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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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센터에서 일을 시작한지 두달 만에 skin to skin으로 혼자서 한 수술 후 사진. 주먹 크기만한 종격동 종양이었고, phernic nerve 위치가 종양과 인접해서 수술 내내 내가 신경을 끊어먹은건 아니겠지 하며 조마조마했지만 결과적으로 아무런 문제없이 회복중이다. sternum 아랫쪽으로 chest tube를 두 개 넣었는데 의도하지않게 그 모양이 양쪽 대칭을 이루면서 위쪽 1, 2, 3번 rib과 함께 하트모양이 되어버렸다. 처음엔 RUL atelectasis에만 신경이 쓰여 하트모양임을 깨닫지 못하다가 한 선생님이 얘기해주셔서야 나름 재미있게 되었구나 싶었다.


이런걸 보고 재미있다고 하면 좀 변태스러운건가? :-)






2009/07/12 15:51 2009/07/12 15:51
by 박성용

20090625

2009/06/25 15:15

 

1.

아침에 출근해서 인터넷으로 뉴스를 보다가, 최근 안락사 사건에 관한 기사를 읽고 여지껏 기분이 상당히 불쾌하다. 김할머니의 보호자측이 '불필요한 치료에 대한 위자료를 병원에 청구했다'는데, '인공호흡기가 필요없음에도 인공호흡기 치료를 하였다' 라는 것이다. 한정호 선생님 블로그에 있던 내용을 빌리자면

'인공호흡기를 제거하고 사망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인공호흡기를 설치한 것이 과잉진료이다.'
'불필요한 의료행위(인공호흡기)로 생명이 연장되어 그 기간 동안 보호자들이 심적 고통을 받아서 위자료를 청구한다.'

라고 한다. 인공호흡기를 뗐는데 바로 돌아가시지 않으니 과잉진료라는 의미이다.

아주 가끔 이런 경우에 대한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 weaning이 되지 않고 lung은 안 좋아져서 거의 hopeless로 무작정 ventilator를 제거했지만 의외로 환자가 잘 견디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듣고 본 경우에는 곧 호흡기계의 합병증으로 인해 다 돌아가셨다. 정확한 환자의 상태는 모르지만, 일반적인 예후를 보면, 당장 respiratory insufficiency가 오지 않는다고 해도 조만간에 secretion내지는 aspiration으로 인한 pneumonia가 올 것이고 이로 인해 돌아가시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 점이 바로 병원에서 말하는 '2주에서 4주사이'의 의미이다. 어떤 이유던지 hypoxic brain damage를 입은 환자들을 ventilator weaning을 했다고 해도, 결국은 이런 예후를 거쳐 대부분 사망하게 된다. 이런 사실을 알기 때문에 설령 weaning이 가능한 상황이라고 해도 weaning을 시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소송에 걸려있고 언론이 다 지켜보고 있는 상태에서 무리수를 둬 가며 weaning을 하고 돌아가시게 할 필요가 있을까?

인공호흡기로 인해 생명이 연장되어 보호자들이 심적으로 고통을 받았다면, 호흡기도 달지 않고, 아니면 호흡기를 떼자마자 돌아가셔야 심적인 고통을 받지 않는다는 얘기인가?

모든 침습적인 검사에는 위험이 따르고 그로 인해 사망할 수도 있다. 검사에 동의하고 진행했다는 얘기는 이런 위험 부담을 받아들인다는 의미이다. 검사를 진행하다가 문제가 생겨서 돌아가시면 돌아가신것 때문에 책임을 져야 하고, 돌아가시지 않게 resuscitation을 하면 불필요하게 살려 놓았다고 책임을 져야 하면 의사는 늘 멱살만 잡히는 직업인가?




2.

보호자들이 어떤 생각으로 그러는지 몰라도, 결코 일반 상식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선을 넘어 버렸다. 차라리 검사중에 문제가 생겼으니 민사소송을 통해 위자료를 받고 끝내는 것이 깔끔할뻔 했다. 그 이상을 넘겨서 얘기하는 것은, 도대체 저의가 뭔지 궁금해질 뿐이다.




3.

임상의로서 시간이 흘러갈 수록 이상한 환자 보호자가 많다는걸 깨닫게 된다. 덕분에 어떤 이상한 행동이나 말을 하건 욕만 안 하고 멱살만 안 잡으면 감사하다고 생각하는, 참으로 쿨한 임상의가 될 듯 싶다.





2009/06/25 15:15 2009/06/25 15:15
by 박성용

초록 마감

2009/06/21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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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준이가 쓰고 있는걸보고 탐만 내고 있다가 결국은 HDTV 겸용 와이드 모니터를 구입했다. 새삼 모니터의 가격이 몇 년전과 비교해서 무척 떨어져서, 하룻밤 술 한 잔 마시는 가격이면 이렇게 좋은 모니터를 살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무엇보다도 와이드이기때문에 액셀파일로 데이터 마이닝을 할때 편한건 말할 수가 없다. 한 쪽에는 엑셀창을, 다른 한 쪽에는 OCS나 SPSS를 띄워놓고 작업을 하면 한 눈에 모든게 들어오니까. 이제 방에 아날로그 튜너만 한 대 가져다 놓으면, 앞으로 1000일을 더 지내게 될 내 방에 생필품은 다 구비하게 되는 셈이다.

19일이 STS 초록 마감이었는데, 우리나라 시간으로 따지면 20일 저녁, 더욱이 약간의 융통성이 적용되면 21일 아침까지 초록 마감이었다. 선생님의 배려로 (단순히 윗 사람이 아랫 사람에게 초록을 내라, 라고 시키는 것 이상의 고마움을 느꼈기 때문에 '배려'라는 단어를 쓴 것임) STS 초록을 준비하게되었고, 토요일에는 당직도 아닌데 오전 8시부터 일요일 새벽 1시까지 병원에서 계속 초록 준비작업을 하게 되었다. 다행히 하루 종일 비가 오긴 했지만 (이게 왜 다행이라는건지) 사실 저녁 약속도 있었고, 간만에 토요일 저녁에 집에서 쉬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초록 준비 과정 내내 나의 부족함이 많이 드러났고 (통계로 잘 못하고, 영어도 안 되고, 논리적인 글쓰기도 잘 안 되고) 언젠가 해야 할 일이면 하루라도 빨리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는 조바심에 하루를 잘 견디어 낸 것 같다.

초록이 채택이 될지는 모르지만, 채택되면 내년 1월을 목표로 영어회화학원이라도 다녀야할듯 하다. 유럽이 아닌 미국에서 영어로 발표하는건, 생각만 해도 오금이 저리는 일이니까. (이전에 유럽에서 영어로 발표해본적은 있지만, 워낙 비중이 없는 학회라 큰 문제는 없었고, 그에 비하면 STS는.. 흠..) 채택이 안 되도, 내가 무엇을 못하는가에 대해서는 테스트를 받았다고 생각하면 되고.



메일함을 정리하다가 우연히 올해 초에 본 토정비결을 다시 열어보게 되었다. '올해는 능력에 비해서 과도하게 인정을 받아 그 기대를 채우기 위해 많은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 해 입니다.' 라는 문장이 눈에 띄었는데 요즘 내 모습이 그런게 아닌가 싶다. 그래도 능력 이상의 인정을 받아 그만큼 더 일하게 되는 것에 거부감은 없고, 이래야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진다고 생각하면 좋은 쪽으로 해석해야할듯 싶다.




P.S.
주말 저녁에 '2009 외인구단'을 챙겨서 보고 있는데, 정신병적인 까치등 수많은 언짢은 부분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엄지 동생 현지의 외모는 정말이지 빛을 발하는듯 하다. 아.. 연기는.. 보고 있음 보는 사람이 민망할 정도 --a 그래도 답답했던 토요일에 유일한 활력소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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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2

요즘은 피곤해서 그런지 밤에 잠이 안 오는 경우는 없었는데 (거의 머리만 대면 자는 수준이었음) 어젯밤에는 뒷목도 땡기고 몸이 찌뿌듯해서 새벽 3시까지 잠이 오질 않았다. 피곤하면 잠이 잘 온다지만, 극도로 피곤하면 몸은 아픈데 정신이 몽롱하면서도 말똥해져서 잠마저도 안 오는 경우가 있다. 요 며칠 사이에 좀 그러더군.. --a




2009/06/21 10:37 2009/06/21 10:37
by 박성용

가운

2009/06/18 00:14

 

지금 근무하는 병원에 처음 와서 생소한 것 중 하나가 가운에 대한 부분들이었다. 우선 가운을 치수를 재서 각자 맞춤으로 입는 것이 아니라, 기성복처럼 100사이즈, 105사이즈 이런 식으로 크기들이 정해져 있는 것중 선택해서 입는 것도 그렇고, 가운을 세탁을 하고 오면 풀을 먹여서 빳빳하게 만들어 입고 다니는 것도 어색했다.

인턴 레지던트 수련을 받은 병원에서는 사람마다 사이즈를 재서 각자 맞추어 입었다. 그리고 세탁을 보내도 풀을 먹이는 일은 없었다. S대 계열 병원들보다는 기장이 짧은 편이고 몸에 맞추어 입어 활동성을 강조하는 느낌을 준다. 전문의 이상에서는 허리아래까지 내려오는 긴 가운이 아니라 재킷같은 짦은 가운을 입어, 가운만 봐도 그 의사가 펠로우 이상 전문의급인지를 알 수가 있다. 더욱이 그 재킷들은 몸에 꽤나 잘 맞게 되어 있어서 의사들의 외적인 부분에도 신경을 쓴다는 인상을 준다.

지금 근무하는 병원은 가운이 기성복 사이즈로 되어 있고, 기장도 길고 품이 넓어 마치 마대자루를 쓰고 다니는 느낌이다. 더욱이 어깨에 비해서 허리 아래가 더 넓어지는 마름모꼴의 모양은 가끔 거울을 볼때마다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준다. 그리고 여전히 풀을 먹인 느낌은 어색하고, 오히려 활동적이지 못하다는 인상을 주며, 결정적으로 가운을 보고 의사의 직급을 판단하기가 어렵다.

복식은 그 문화권의 생활 양식과 문화를 반영한다, 는 건 당연한 얘기이지만, 병원들간에도 가운이 이렇게 다르고, 그 다른 가운을 통해서 나타나는 병원 분위기나 문화를 엿볼 수 있다는건 은근히 재미있는 부분인듯 하다. 개인적으로는 여전히 수련 받은 병원에서 입던 몸에 맞고 풀 먹이지 않은 부드러운 가운이 좋고, 활동적이면서도 권위적인 분위기가 좋다. (말하고 나니 활동적인 것과 권위적인 분위기는 맞지 않는듯 --a)


P.S.
오늘 문득 가운은 장수에게 있어 '갑옷'과도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뭐랄까, 거친 보호자들과 환자들에게서 의사임을 증명하는 것은 단정한 가운뿐이 된 세상이 되어 버리고 있으니깐. (나름 심각한 얘기임...)






2009/06/18 00:14 2009/06/18 00:14
by 박성용

흉부외과 공보의의 하루

2009/06/08 22:03

 

경남에서 어업지도선을 타다가 '보건복지부장관 표창'을 받고 파주의료원으로 올라온 현종이형 블로그에 '도립의료원 응급의학과 공보의의 하루'라는 글이 재미있어 나도 따라해본다. 이런걸 오마쥬라고 하는건가? :-)  여튼 장관 표창을 받는건 정말 쉬운 일은 아니다. 파주면 일산과 그리 멀지 않은데 조만간에 얼굴 한 번 뵈야 하지 않을까. (http://blog.daum.net/doctorbear/17195254)




아침 5시 50분 기상
일어나자마자 커피메이커에 전원을 넣고, TV를 켜서 아침 뉴스를 틀어 놓았는다. 양치를 하고, 면도를 하고, 샤워를 함. 평상시는 전날 밤에 사 놓은 샌드위치나 삼각김밥 같은걸 먹고 출근하는데, 어제는 사 놓은게 없어서 그냥 커피 한 잔과 생수 한잔 마시고 출근. 집에서 나오는 시간은 대략 6시 20분에서 30분 사이.


아침 6시 반 병원 도착
아침 X-ray 사진을 쭉보고. 챠트에서 전날 vital sign 확인하고 나면 오전 7시 가량 됨. 빈 속에 아침에 새로 내린 드립커피를 두어잔 마시고 나니 속이 상당히 쓰림. 오더를 낼 환자는 오더를 정리하고, 시간이 남으면 인터넷으로 뉴스를 보고, RSS 피드받고 있는 블로그들에 새로운 글이 올라왔는지 확인한다. 항상 6시부터 7시까지는 (제목은 잘 기억이 안 나지만) 바로크 음악을 틀어주는 1FM을 듣고, 아침 7시에는 이어서 '출발 FM과 함께'를 듣는다. 이마저도 요즘 중환이 없어서 누리는 호사이지, 중환이 있으면 이 아침 시간마저도 바쁘다.


아침 8시~8시반 아침 회진
선생님들 사정에 따라 조금씩 틀리지만 8시 넘어서 아침 회진 시작. 다같이 사진을 보고, 환자에 대해서 얘기하고 병동 회진을 돌고나면 9시가 넘는다. 대게의 경우 아침 첫 케이스 환자가 9시 전후에서 준비가 되기 때문에, 내가 맡은 환자가 준비가 다 되면 회진 중간에 수술방에 들어간다. 오늘의 경우는 사진만 보고 수술방에 바로 들어감.


아침 9시 수술방
첫 케이스를 전문간호사와 인턴과 함께 열고 있으면 9시 반 쯤 Staff 선생님이 들어오신다. 오늘 환자는 adhesion이 심해 박리하고 있으니 10시쯤 선생님이 들어오심. 전반적으로 유착이 너무 심했고, 수술 중에 이벤트도 있어서 오늘 첫 케이스는 오후 1시 반에 끝났다. 수술 중간에 가슴 철렁했지만 다행히 환자는 중환자실 나가서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오후 1시 반에 점심을 먹고 다시 수술방에 가서 두번째 케이스에 들어감. 두번째 케이스가 끝나니 오후 4시. 다른 수술방에서 뭐 하나 둘러보고나서 수술방에서 나오니 오후 4시 반.


오후 5시 오후 회진
오후 5시쯤 환자들 오후 회진을 짧게 돌고, 메일을 확인하니 staff 선생님께서 이번 춘계 학회때 발표할 raw data를 보내주셨다. 연구간호사에게 추가 자료를 부탁하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함. 몸이 너무 피곤해서 아무런 생각이 안 들어 한 시간 가량을 그냥 자리에 앉아 있음. 내일은 수술이 별로 없으니 내일 시작하자고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룸.'


오후 6시 저녁식사
대게의 경우 병원 구내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퇴근을 하는데, 오늘은 한 선생님이 같이 식사를 하자 하셔서 흉부외과 전문간호사와 연구간호사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함. 내친김에 호수공원에 산책을 가서 약 30분 가량 얘기를 나누며 걷다가 오후 8시반에 병원에 들어옴. 이런 저녁 식사와 산책은 일주일에 한번 정도? 여튼 이례적인 일이다. 하지만 호수공원이 이렇게 좋은 곳인지는 오늘 처음 알게되었음.


오후 9시 퇴근
저녁 X-ray 확인하고, 보호자 설명하고, 이것저것 하다보니 9시가 넘어서 퇴근. 오늘같이 환자들이 괜찮을때는 9시 정도 집에 가고, 아니면 7시에 퇴근할때도 있지만, 어떤 날은 병원에서 자거나 혹은 11시 넘어서 집에 가기도 한다. 처음 발령받고 2주 동안은 집에 간 날보다 안 간 날이 더 많았지만, 요즘 환자군이 stable 해지면서 8시에서 9시 경에 퇴근하는 편.

집에 들어오다가 집 앞 제과점에서 내일 아침 먹을거리를 사들고 옴. 들어와 씻고 인터넷 좀 하다, 뉴스도 보고,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다보면 11시에 12시 사이가 되고 대게 12시를 넘기지 않고 취침.

밤 10시가 넘으면 뼈마디마디가 욱신거리고 몸이 상당히 힘들어서, 아무런 생각이 안 든다. 만약 내가 술을 잘 마시는 사람이었다면 매일 맥주라도 한두잔 마시고 잤을 것이다. 왜 외과의사들이 술을 많이 마시는지 요즘 들어서야 알꺼 같다. 술을 마셔야만 몸이 덜 아프기 때문이다.







2009/06/08 22:03 2009/06/08 22:03
by 박성용

원격제어시스템

2009/06/05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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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원격으로 병원정보시스템에 접속할 수 있게 되었다. 엄밀하게 말하면 '원격제어'는 아니고, 전산 시스템을 통해 의료정보의 일부를 외부에서 엑세스 가능하게끔 해 놓은 시스템이다. 병원에 근무하는 전문의 이상에서 신청가능하고, OCS를 통해 오더는 넣을수 없지만, 각종 병리검사 결과 및 PACS는 확인 할 수 있다. 덕분에 새벽에 사진 봐 달라는 전화를 받고 병원에 나가지 않고 집에서도 사진을 볼 수도 있게 되었다. --;

'레지던트'의 어원은 병원에 '상주'하는 의사라고 한다. 전문의들은 '레지던트'가 아니기 때문에, 전문의로만 구성된 병원에서는 2차병원이건, 3차병원이건간에 이런 원격시스템이 존재한다. 병원차원에서 이런 시스템을 막아놓은 병원들도 있어서, 네이트 원격제어를 사용하거나 rview.net 같은 프로그램을 사용하여 원격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현재 근무하는 암센터는 rview.net에 의한 원격제어를 막아놓았다. 병원에 있는 컴퓨틑 원격제어하는 방식을 사용하면 단순히 사진과 검사 결과만 확인하는 정도가 아니라 오더까지 내릴 수 있게 되는데, 편법을 사용하면 될꺼 같기도 하나, 굳이 더이상 머리를 싸매지 않으려고 한다. 오더를 내야 할 정도라면 병원에 출근해서 환자 직접 보고 오더를 내리는 것이 원칙적인 일이니 말이다.

그나저나, 이게 된다고 좋아하는 내 모습을 보니 뭔가 좀 이상한거 같다. --a




P.S.
당연히 공인인증서를 통한 접속도 필요하고 여타 등등 보안은 철저하다.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자료 유출등의 문제는 없을 듯.

P.S.
병원에서 일하면서 제일 힘든건 수련받은 병원과 용어가 너무 다르다는거다. 좀 전에 간호사에게 call 이 왔는데
'선생님, OO씨 CR consult 보셨어요?' 란다. '뭐요? CR이 뭔데요?' '환자 a.fib 있다고 consult 보신거요..'

CR은 cardiology 라는 뜻인가보다.. 지금까지 내가 아는 CR은 complete remission 아니면 clinical research의 약자였는데.. 이젠 cardiology라는 의미가 있다는 것까지 생각해야 하다니.. --a 근데 사용하는 용어의 절반 이상은 처음 보고 듣는 용어들이 많다.

일반식 상식 = NRD = Normal regular diet 이라는 것도 오늘 '식이처방지침' 책자를 찾아보고서야 제대로 알았다..  --a
그럼 SFD, SBD 는 무슨 약자게요?









2009/06/05 21:19 2009/06/05 21:19
by 박성용

한 달

2009/05/31 23:57

 

훈련소에 나와서 새 직장에서 일한지 한 달이 넘어간다. '직장'이라는 말이 맞을지, '부임지'라는 말이 맞을지, '자대'라는 말이 맞을지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지금 나의 신분이 '공보의'라고 말하는게 맞을지 '전임의'라고 하는게 맞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내가 이해하고 있는대로라면 '내부적으로 전임의 대우를 받는 공보의로서 일하는 직장' 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다.

학생때는 빨리 의사가 되고 싶었고, 인턴때는 레지던트가, 레지던트 저년차때는 고년차가 되고 싶었고, 4년차때는 전문의만 되면 일단 한숨돌린다 생각했는데 막상 전문의가 되고 나니 오히려 레지던트때가 편했던거 같다. 가장 좋기로는 학생때가 제일 좋았다. 며칠사이 실습도는 학생들이 자신들이 힘들다고 투정부리는 모습을 보았는데, 장담컨데 학생때를 그리워할날이 올 것이다. 그리고 인턴이 힘들다고 하는 사람들은 언젠가 인턴을 그리워하는 날이 오게 된다.

몇 주전엔가 술자리에서 한 선생님이 말씀해주시길, 시간이 지나고 지위가 올라가면 시간적 여유가 더 생기고 편해질꺼라 생각을 하지만 결코 그런 시간은 오지 않는다, 지금 순간보다 더 힘든 날들이 기다리고 있을테니 무언가를 뒤로 미루지말고 현재에 해내야 한다, 라고 했다. 아마 지금 내 상황이 그렇지 않을까 싶다. 이제 병원에 적응도 어느 정도 되가고 분위기 파악도 했으니, 힘들기는 하지만 힘들다는 생각은 그만하고 이제 본격적으로 공부도 하고 결과물도 만들어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학회 내내 했다.

아울러 흉부외과 의사가 중환자가 없고 편안한 상황들을 맞이하고 싶다는 기대는 평생 하지 말라는, 그래서 중환이 많고 그 가운데서 늘 스트레스를 받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도 잊지 말아야겠다. 첫 한달동안 이래저래 중환들때문에 많이 답답했는데, 평생 중환들에 둘러싸여 살게 될테니 이제는 그 속에서 평온을 얻는 방법을 (이런게 있기는해?) 찾아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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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0월경에 86kg까지 되던 몸을 약 6개월만에 76kg까지 만들고 현재 직장에 들어가, 처음 몇주간 힘들어하며 75kg까지 빠지더니, 며칠사이 회식자리가 많고 자제를 하지 않아 그런지 다시 76kg까지 올라갔다. 승준이가 학회때 찍어준 사진을 보니 아직 배가 좀 나와있네 --a







2009/05/31 23:57 2009/05/31 23:57
by 박성용

Turnitin.com

2009/05/21 22:03

 

비영어권에 사는 사람이 영어권의 저널에 논문을 쓴다는 것은 늘 고역이고, 그래서 편법아닌 편법이 기존의 논문들에 나왔던 문장들을 짜집기해서 문단을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표절에 대한 규정이 강화되어서, 이런 짜집기마저도 사용하지 못할 처지가 되었다. 더욱이 Turnitin 이라는, 기존의 저널 데이터베이스와 비교해여 내가 쓴 논문이 기존의 자료들과 얼마나 일치를 보이는가를 찾아주는 웹사이트도 있다. 기술 구현 방식은 전혀 어려워보이지는 않지만, 이걸 세상이 좋아졌다고 해야 하는건지 빡빡해졌다고 해야하는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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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가을 학회때 발표하고 여지껏 붙잡고 있는 논문을, 혹시나 해서 www.turnitin.com에서 일치율을 검색해봤다. 전체 본문 중 약 6%가 기존의 논문들과 일치된다고 보고되었고, 그 논문들의 구체적인 제목까지 검색해주었다. 그리고 그동안 논문 작성을 위해 참고했던 자료들과 너무나도 일치한 결과를 보여줌에 따라, 세상에 이제 누구에게 무언가를 감추거나 숨기는건 거의 불가능하다는걸 뼈저리게 느끼는 중이다. --;


P.S.
처음에 아이디 등록이 안되서 한참 고생하다가 결국 어떻게어떻게 해결했음.
나름 신기하니 관심있는 분들은 한 번씩 해 보길 --a




2009/05/21 22:03 2009/05/21 22:03
by 박성용

괴리

2009/05/20 19:36

 

몸이 예전같지 않다고 느낀게, 지난주 목요일에 거의 밤새다시피 하니 (사실은 한시간정도 자기는 했음) 주말 내내 몸살 기운이 있었다. 예전처럼 2-3일 밤 새는건 이제 안되는 모양이다. 월요일도 하루종일 몸이 안 좋고, 화요일에 수술들어갔다나오니 뼈마디가 빠질듯이 욱신거리듯 아파서, 어제는 밤 10시부터 새벽 5시까지 내리 자고 나니 오늘은 좀 몸이 풀리는 것 같다.

괜찮아졌을때 좀 쉬자 싶어서 오늘 6시 반쯤 퇴근을 하려고 엘레베이터를 탔는데, 담당하고 있는 환자와 보호자, 그리고 병문안 온 보호자와 함께 타게 되었다. 병문안 온 보호자가 하는 말이 '선생님, 일찍 퇴근하시네요' 좀 당황스러워서 가만히 있자 환자와 보호자가 내 편을 들었다. '선생님 매일 늦게까지 계시다가 오늘 집에 일찍 가시는거야. 밤늦게까지 병원에 계시는데.'

요즘 6시반쯤 출근해서, 일찍 퇴근하면 8시에서 9시전후에 퇴근하고, 일주일에 반 정도는 집에 안 가거나 혹은 집에 들어갔다가 밤에 다시 출근하곤 했다. 다른 공보의와 비교하는 것도 아니고, 다른 전문의와 비교하는 것도 아니지만, 전문의 자격증을 가진 사람이 이 정도의 보수를 받고 이렇게 일하는 경우는 대한민국 어디에도, 전세계 어디에도 없는건 분명하다.

자본주의 의료의 대표격인 미국의 경우도 이렇게 일하면 흉부외과 전문의의 보수는 상상을 초월한다. (우리나라의 잘 나가는 프로운동선수들보다 연봉이 몇 배는 높다고 생각하면 된다.) 아니면 사회주의 의료 정책을 가진 영국같은 곳에서는 흉부외과 전문의에게 진료를 받는것 자체가 어렵다. 일본에서는 응급환자의 경우도 흉부외과 의사가 없어 수술을 받지 못하고 사망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나라처럼 이런 낮은 수가에 부르면 바로 오는 흉부외과 의사를 가진 나라는 없을 것이라는데에 확신한다. 나 역시 돈을 벌기 위해서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일한만큼 돈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물론 당연히 일한 만큼의 돈을 받는건 당연하지만, 지금 내 신분도 있고하니 경제적 논리만으로는 설명해서는 안된다는 의미) 그래도 이렇게 일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만약 내 위의 선생님들이 내가 이렇게 일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신다면 그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의사들은, 그리고 흉부외과 의사들은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한다. 그리고 진료뿐 아니라 공부나 연구등으로 인해 대부분의 큰 병원 staff 들이 10시 가까이에 퇴근을 한다. 그리고 나 역시 그래야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환자 당사자도 아니고 간병하는 보호자도 아닌 처음 병문안 온 보호자가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늦게까지 일하는 것에 대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건 분명 문제가 있다.

자, 보자. 세상에 우리나라 직업중 지금 내 월급정도를 받고 아침 6시 반 부터 밤 9시까지 일하는 직업이 있는가? 의사가 아니라고쳐도 말이다. 밤 9시에 들어가서, 아님 자주 그 이후에도 병원에 다시 나오고 하면서 정상적인 생활이나 대인관계가 유지되리라고 생각하는가? 의사라면 당연히 사적인 삶과 정상적인 삶을 포기해야 하는가? 아무런 보상없이? 내가 자발적으로 그렇게 하는 것과,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데에는 너무 차이가 많으며, 그 차이때문에 답답한 마음뿐이다.





2009/05/20 19:36 2009/05/20 19:36
by 박성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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