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
2007/05/05 11:43

토요일 오전, chemoport를 하나 넣을 일이 있었다. 폐암으로 항암치료를 하는 환자인데, 혈관이 좋지 않아 항암제를 맞을 혈관이 좋지 않아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인공 혈관을 만드는 시술이다. 환자에 따라 잘 되는 환자도 있고, 또 안되는 환자도 있는 법인데, 결과적으로 chemoport가 잘들어가면 본전이고, 하다가 문제가 생기면 비난을 받기 마련이라서 제일 하기 싫은 시술 중 하나이다. 오늘 시술할 환자도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환자라서 쉽지 않았고, 그래서 생각보다 시간이 좀 걸렸고 환자도 힘들어 했다.
외과 의사에게 어떤 시술이 잘 되고 안 되고는 그 사람의 자존심과 직결되는 일이다. 간단한 튜브를 넣는 것에서, 복잡한 수술까지, 수술이 빨리 성공적으로 되면 뿌듯하고, 반대로 잘 되지 않으면 자존심도 상하고 우울해지기 마련이다. 나 역시 다른 사람들보다 그런 면이 심하면 심했지, 결코 초월한 사람이 아니다. 괜히 혼자서 오늘 나온 기구들이 예전에 쓰던게 아니라서 그렇다, 세트가 바뀌어서 그렇다는등 짜증만 내고.
시술을 마치고 흉부 방사선 촬영을 해서 성공적으로 인공 혈관이 위치했는지 확인할 때 까지 무척이나 조마조마했고, 그러고 나서도 마음이 놓이질 않아 갱의실에서 옷을 갈아 입자마자 바로 병동으로 올라가 환자가 괜찮은지 확인했다. 그런데 환자가 '잠깐 우리 선생님 얼굴 좀 봐요'하고 가까이 오라고 하는 것이다. 평소 내 말 버릇대로 '아 매일보는 얼굴 뭘 또 보시게요'했더니 바지 주머니에서 부스럭 거리면서 만원짜리 지폐 두장을 꺼내서 내 가운 주머니에 넣고는 '아까 하느라 욕봤는데, 아들같아서, 그냥 음료수 사 마시라고'란다. 생각처럼 빨리 되지도 않았는데 받는게 상당히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 '아, 이런거 받을 수 없어요, 돈 받으려고 하는거 아니에요'라고 하는데 극구 돌려받지 않으려고 한다.
순간 환자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시술이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는 것의 문제가 아니라, 시술이 오래 걸리는 것 자체가 환자에게는 힘들었을텐데 그 생각보다는 이게 빨리 안 되니 나 자신에게 짜증이 나고 자존심이 상하는 내 자신이 치졸해보였다. 외과의사가 빨라져야 하고, 정확해져야 하고, 담대해져야 하고, 무결해져야 하는 것은 자존심 때문도, 논문에 발표할 성적 때문도, 하루에 몇 개를 했다는 기록 때문도 아니다. 그건 미우고 고우나 믿고 몸을 맏긴 환자를 위해서야 할 것이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오늘 받은 촌지는, 짧은 의사 생활에 몇 안되게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Administrator only.
Administrator only.
실습 돌기 힘드시죠? 학생때는 빨리 의사되고 싶었는데 막상 또 의사가 되니 학생때가 제일 좋은때 같아요.. 학생의 자유라는것, 마음껏 누리세요 :-)
음... 윤리위원회에 제소될 수 있다...
:-)
아..가슴 따뜻해지는 일이네요. 그거 못쓸 것 같은데 어디에 쓰셨어요? ^^:
잘지내시죠? 홍석오빠 장가가셨다는 소문이 안이병원에 들려오는 것을 보니 한달은 지난것같은데..-_-;;안이병원에 갇혀있다보니 바깥소식은 영깜깜합니다. ㅎㅎ 얼마전 HICU 간호사샘이 안과에 오셔서 HICU소식을 전해주고 가셔서 생각나서 이렇게 들러봅니다. 꾸깃한 만원짜리의 실루엣이 너무 마음에 드네요^^;;
나야 늘 똑같지 뭐. 얼마전 로비에서 마주친거 같은데.. 잘 지내지? 그래도 안과는 1년차만 지나면 좀 편해지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