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트로포비치의 죽음

2007/04/29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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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on 5D, EF 50mm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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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금요일 저녁, 한 명의 환자가 사망했고, 펠로우 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술이나 한 잔 하자고. 근래 나는 몸이 좋지 않아 술은 못 마시고, 대신 펠로우 선생님과, 어제 처음 뵙게 된 형수님까지 해서 이런 저런 얘길 나누었다. 병원 생활 넋두리에서 시작된 자리였지만, 펠로우 선생님을 가장 우울하게 만드는 것은 2007년 4월 27일, 거장 로스트로포비치가 사망했다는 점이라 했다. 학생때부터 첼로를 배웠고, 군에 있을때는 사비를 들여가며 첼로 레슨도 받고 마지막에는 지방 의료원에서 작은 연주회까지 열었던 선생님에게는, 그의 사망이 세상의 한 구석이 무너진 것 같은 상실감을 주었고, 아직 그의 연주를 주의깊게 듣지 못해본 나로서는 막연한 아쉬움이 들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울적해졌다.



물론 4월 27일 사망한 사람은 그 뿐이 아니었다. 환자의 대략적인 얘기라도 하는게 꺼려지지만, 여튼 우리 과 입원 환자도 많은 고생을 하고 그날 사망했다. 그 과정이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이제 웬만한 죽음에는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어떤 일에도 새삼 놀라지 않기에, 의학적인 면에서야 환자가 고생했지만 잘 견디다 돌아가셨구나, 싶지만, 보호자의 반응, 보호자와의 관계에 있어서는 너무 많은 일이 있었다. 보호자로부터 인격적인 모욕을 당한 것은 수많은 일들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이 존엄성을 지키며 살고 죽는다는 것, 보호자로서 무엇이 환자를 진정 사랑하는 것이고 또 존엄성을 지키며 상실감을 받아들이느냐에 대해서 여러 생각이 들었다. (우연이지만 로스트로포비치와 우리 환자의 사인이 같다는 점이 참 아이러니했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1달전에 수술하고 고생끝에 퇴원했던 환자의 보호자가 병원으로 찾아왔다. 보호자는 미국의 모 대학에서 심리학 교수로 있는 분인데, 잠시 귀국했다가 찾아온 모양이었다. 중환자실에게 조마조마하고 있던 그 무렵, 잠시 만나 내게 건내준 봉투에는 작은 카드와 조그만 책자가 들어 있었다. 카드에는 'Dare to be remarkable' 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리고 그와 같이 되길 빌겠다고 했다. 책자는 그가 살고 있는 샌프란시스코의 산책로를 소개하는 소책자였는데, 책을 넘기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가벼워졌다.



언젠가 얘기했지만, 100명의 환자를 만나면 90명의 환자는 별다른 관계가 형성되지 않고 일상적으로 지나가고, 8명의 환자는 정말 인간적인 유대가 이루어지며, 1-2명의 환자는 세상에 이럴 수도 있구나 할 정도로 세상과 사람들에게 환멸을 느끼게 한다. 내가 아직 젊지만,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이면, 로스트로포비치와 같은 거장이 되면, 그 한 두명의 환자마저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그릇이 될 수 있을까. 한 날, 극과 극을 경험하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2007/04/29 00:52 2007/04/29 00:52
by 박성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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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원우아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07/04/29 22:12
    슬라바 죽은거 나도 보고 왠지 모를 충격같은게 있었지.
    사실 슬라바를 추앙하거나 뭐 그런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 시대의 거장을 한명 잃었다는건 상실감이 좀 있잖아.
    어쨌든 사람들 사이에서 이런저런일로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쩔 수 없는 것이기도 하지만 말야...
  2. Hwan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07/04/29 23:58
    네 블로그 글을 보다 보면 남에게 털어 놓을 수 있는 고민과 우울함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남에게 털어 놓기 어려운 고민은 훨씬 더 괴롭지 않을까...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것도 힘든 일상을 버텨가는 하나의 방법일 듯...
    • 박성용  댓글주소  수정/삭제 2007/05/01 06:01
      얘기할 수 있는 고민과 절망은 실제 큰게 아닐 수도 있어요.. 형 말대로.. 그냥 넋두리 내지는 짜증정도겠지요 뭐..
  3. mist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07/05/20 15:11
    그래도 로스트로포비치는 자신을 거장으로 알아보는 자기와 맞는 시대에 태어났으메 얼마나 축복받은 삶인가요. 세상에는 시대가 잊고 시대가 놓쳐버린 채 쓸쓸히 죽어간 예술인들 참 많으니까요.
  4. Secret visitor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09/02/06 01:35
    Administrator only.
    • 박성용  댓글주소  수정/삭제 2009/02/06 19:47
      아.. 어떻게 여기까지 알고 오셨나요.. 아침에 열어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

      어머님께서 건강하셔서 미국까지 다니실 정도라니 정말 다행입니다. 저 역시 상처가 많이 걱정이 되었는데 말이에요.

      고작 2007년 초의 일인데, 2년이 안된 지금 너무 많이 바뀌어있지요. 선생님들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저도 언제 샌프란시스코 갈 일 있을때 연락드려도 되지요? :-) 언제 이메일 주소라도 남겨주세요 :-)
  5. Secret visitor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09/02/08 18:03
    Administrator only.
    • 박성용  댓글주소  수정/삭제 2009/02/08 23:36
      :-) 아니, 결혼을 했어야 조기 유학을 보내지요 :-) 사실 제 친구들도 동부쪽에 꽤 많이 살고 있어 - 주로 의사 생활을 하지만 - 장난으로 자식 낳으면 너네 집에서 키워주라.. 하고 있습니다 :-)

      학생때는 여행다니며서 사진을 찍는 것이 취미였는데, 근 몇년동안 시간이 나지 않아 하지 못하다가, 요즘 다시 시작해볼까 합니다. 원하시는 사진을 부탁하셔도 되구요 :-) 여기에 올려지는 사진이 큰 크기가 아니어서, PPT용으로 필요한 사진중 홈페이지에 올려진 사진의 크기가 작으면 제게 연락을 주시면 큰 파일을 보내드릴 수 도 있습니다. 단 아주 작게라도 저작권까지는 아니고.. 블로그 주소라도 적어주시면 더 감사하지요 :-)

      은근히 사진을 통해서 외국분들이 들어오는 경우가 상당히 있군요. 예전에 미국에서 불교를 가르치는 선생님 한 분도 연꽃 사진을 부탁하신적이 있는데요 :-)

      어머님 몸 관리 잘 되시길 진심으로 바라겠습니다. :-)

      안그래도 요즘이 보름이었다고 하니 사진을 한번 찍어봐야겠군요.. 오늘 달이 참 크던데요 :-)
  6. Secret visitor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09/02/09 01:07
    Administrator only.
    • 박성용  댓글주소  수정/삭제 2009/02/09 12:55
      정말 좋은 일 하시네요 :-) 가끔 다큐멘터리 보면 입양된 분들 이야기 나오잖아요. 그 때마다 마음이 무거웠었는데.. 인터넷 싸이트라도 있음 구경하게 알려주세요 :-)

      아.. 근데 저렇게 작은 사이즈의 사진을 배경화면으로 쓰신다니.. 이메일이나 다른 보낼곳 알려주시면.. 그리고 지금 윈도우 화면 해상도 알려주시면 적당히 편집해서 크기에 맞게 다시 보내드릴께요 :-)


      결혼은.. 커녕.. 만나는 사람도 없어요. 뭐.. 작년에 어머님이 dressing 할때마다.. 박선생 결혼했어? 내지는 (이런 얘기는 하면 안되지만..) 사위삼고 싶다.. 라고 했는데.. (우스개인거 아시죠?)




  7. Secret visitor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09/02/10 08:16
    Administrator on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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