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은 감기약 타러 오는 곳이 아닙니다

2004/12/01 11:42

 

응급실에 있다보면 사람들이 가장 많이 불평하는 것은 두가지입니다. 첫째, 진료비가 왜 이렇게 많이 나오느냐. 둘째, 왜 순서대로 안 봐주고 하염없이 기다리게 하느냐.

먼저 둘째 문제에 대해서부터 얘기를 시작해보지요. 언젠가 들은 이야기인데, 예전에 응급실에 찾아 왔던 한 환자가, 의사들이 차례대로 봐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의사와 병원을 상대로 고소를 하려고 한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고소는 실제로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승소할 가능성이 전혀 없기 때문이었을겁니다. 의료법에는 Triage라고 하여, 의사가 판단하기에 위급하다고 생각되는 순서대로 진료할 수 있도록 명시되어 있습니다. 확인해보지 않았어도, 순서가 뒤로 미루어졌다는 사실 자체로 그리 중한 환자가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럼 중한 환자냐 아니냐의 문제는 누가 어떤 기준으로 정하는 것인가. 사람이 아픈건 주관이 작용하기 때문에 어떤 분들은 단순한 장염으로 설사 한 두번하고 배가 아프다고 오는 경우도 있고, 또 어떤 분들은 맹장이 터져서 복막염이 되고도 며칠동안 참다가 병원에 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즉, 환자가 호소하는 증상 자체가 중한지를 따지는 기준이 되지는 않습니다.
대신, 응급의료법에 명시된 응급 상황에 대한 기준을 언급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응급증상

가) 신경학적 응급증상 : 급성의식장애, 급성신경학적 이상, 구토, 의식장애 등의 증상이 있는 두부 손상
나) 심혈관계 응급증상 : 심폐소생술이 필요한 증상, 급성호흡곤란, 심장질환으로 인한 급성 흉통, 심계항진, 박동이상 및 쇼크
다) 중독 및 대사장애 : 심한 탈수, 약물, 알콜 도는 기타 물질의 과다복용 이나 중독, 급성대사장애(간부전, 신부전, 당뇨병등)
라) 외과적 응급증상 : 개복술을 요하는 급성복증(급성복막염, 장폐색증, 급성췌장염 등 중한 경우에 한함), 광범위한 화상(외부신체 표면적의 18%이상), 관통상, 개방성 다발성 골절 도는 대퇴부 척추의 골절, 사지를 절단할 우려가 있는 혈관 손상, 전신마취하에 응급수술을 요하는 증상, 다발성 외상
마) 출혈 : 계속되는 각혈, 지혈이 안되는 출혈, 급성위장관 출혈
바) 안과적 응급증상 : 화학물질에 의한 눈의 손상, 급성 시력 소실
사) 알러지 : 얼굴 부종을 동반한 알러지 반응
아) 소아과적 응급증상 : 소아경련성 장애
자) 정신과적 응급증상 : 자신 도는 다른 사람을 해할 우려가 있는 정신장애

2. 응급증상에 준하는 증상

가) 신경학적 응급증상 : 의식장애
나) 심혈관계 응급증상 : 호흡곤란
다) 외과적 응급증상 : 화상, 급성복증을 포함한 배의 전반적인 이상증상, 골절, 외상 또는 탈골, 기타 응급수술을 요하는 증상, 배뇨장애
라) 출혈 : 혈관손상
마) 소아과적 응급증상 : 소아경련, 38.5℃이상인 소아 고열(공휴일, 야간 등 의료서비스가 제공되기 어려운 때에 3세이하의 소아에게 나타나는 증상을 말한다)


이 기준에 따라서, 기준에 해당되지 않는 환자들이 응급실에 내원하였을 경우, 응급관리료를 지급하게 되어 있습니다. 반면 위 상황에 해당되는 응급환자의 경우에는 '응급' 상황이므로 응급관리료를 지급하지 않습니다. 실제 위 기준에 해당되는 환자가 올 경우는 즉각적인 진단과 처치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 생명이 위험한 상황이 될 수도 있습니다. 첫번째 문제의 이유는 바로 여기서 찾을 수 있습니다.

요즘 제가 근무하는 곳에서 의사 두명이 평일에는 약 80여명, 주말이나 공휴일에는 약 150명 정도의 응급실 환자를 보게 됩니다. 일이 끝날 무렵, 가끔 시간이 날때마다 하루 동안 온 환자들의 명단을 뽑아보면, 하지만 위의 기준에 해당되는 환자는 약 20% 정도에도 미치지 않습니다. 요즘같은 겨울 환절기에 가장 많이 오는 환자들은 '감기약 받으러 왔어요'라면서 응급실 문에 들어서는 환자들입니다.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충분히 낮 시간에 병원에 다녀와서 진단을 받고 약을 받을 수 있었음에도 응급실에 오는 경우도 상당히 됩니다. 당연히 위급성이 떨어지는 환자의 경우 의사는 다른 급한 환자들을 보게 되느라 감기 환자들은 오랜 시간을 기다릴 수 밖에 없고, 한참을 기다려서 몇 분 동안 의사와 얘길 나눈후에 감기약을 타갑니다. 그러면서 지불해야 되는 돈은 응급실마다 조금씩 틀리지만, 약 2만원에서 4만원까지 지불해야합니다. 즉, 응급관리료때문이죠. 그러고는 수납을 하면서 이 병원은 이렇게 불친절하고 나는 제대로 안 받아주면서 돈만 많이 받는다며 오해를 하면서 집으로 돌아갑니다.

낮 시간에 병원에 가면 5천원이면 오랜 시간 의사를 볼 수도 있고 천천히 이야기를 나눈후에 약도 받을 수 있는 것을, 30분 기다려서 3분보고 4만원내고 하루치 약을 받아간다면, 요즘 같은 세상에 납득이 갈 만한 '경제'적인 얘기일까요?
아니 그 보다도, 이렇게 감기약을 타러 오는 분들 때문에 정말 생명의 경각을 다투고 있는 분들에게 쏟아져야 할 의료진들의 관심이 분산된다는 것, 즉 한 사람의 생명을 위태롭게 하는 행동일 수도 있습니다.

응급실은 감기약 타러 오는 곳이 아닙니다.
2004/12/01 11:42 2004/12/01 11:42
by 박성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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