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정의 순간

2007/07/14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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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son R-D1 with Color-Skopar 21mm f4


나이가 들고, 한 영역에서 경험이 많아 진다는 것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의 경계를 명확히 알게 되는 것이다. 경험이 많은 외과의사는 해도 되는 수술과 해서는 안 되는 수술을 구분 할 수 있다. 경험이 많은 사진작가는 '사진'이 되는 상황과 되지 않는 상황을 잘 알고 있다.  29살이 되면서, 나는 발전될 수 있는 인간관계와 발전 될 수 없는 인간 관계를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발전될 수 없는 인간 관계에 대한 미련과 조바심을 버리는 법을 깨닫게 되었다.


토요일 오후, 빛이 너무 좋던 여름, 학교에 산책을 나갔다 멀리 인문관 앞에서 빛 아래 눈부신 능소화를 보았다. 계획했던 산책길을 그 곳이 아니었다. 그러나 본관 앞에서 멀리 빛나는 나무를 보았을때, 나는 그 앞으로 끌리듯 다가갈 수 밖에 없었다. 져가는 햇빛 아래, 역광으로 빛나는 능소화 잎을 보면서 카메라를 들고, 홀린 듯이 100여장이 넘는 사진을 찍었다. 난 알고 있었다. 이렇게 빛의 차이가 많이 아는 역광에서는 좋은 사진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을. 극단적인 빛 아래서 노출을 가늠할 수 없었고, 가늠되지 않는 사진은 찍고 나서 늘 안타까움만을 안겨줄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아쉬움 속에서 사진을 찍는 행위를 계속 할 수 밖에 없었다. 나올 수 없는 사진, 사진이 담고자 하는 그 눈부신 장면들, 아니 사진이 담을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 있는 눈부신 순간을 담고자 하는 무모한 열정, 그 안에 휩싸여 있었기 때문이다.


문득, 살아가는 것 속에 미칠 듯이 가슴 뛰는 일이 없음을 깨달았을때, 그리고 그것이 나이들어감과 감정이 둔해지는 것의 동의어라는 것을 인정하기 시작할때, 그래도 삶 어딘가에는 이것이 운명이라고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순간이, 사람이, 사랑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하게 된다. 눈부신 능소화를 우연히 보게 된 그 순간처럼. 역시 알고 있다. 그 순간은, 그 무엇으로도 담을 수 없고, 붙잡을 수도 없다는 것을. 그렇기에 아쉬워하지고, 미련을 갖지도 않을테지만, 삶은, 그 절정의 순간을 기다리며 버텨나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2007/07/14 19:14 2007/07/14 19:14
by 박성용
category : Trace of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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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Hwan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07/07/15 15:53
    CS 의사가 생각이 많아지는 건 파업의 여파인가? ㅋㅋㅋ

    미련과 조바심을 버리기엔 너무 젊은데... 아직 20대잖아?
  2. chloe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07/07/15 16:45
    발전될 수 없는 인간 관계에 대한 미련과 조바심을 버리는 법.. 궁금하네요.
    저도 구분까지는 이제 어느정도 되는데 미련과 조바심이 쉽게 버려지지 않아서;;
    • 박성용  댓글주소  수정/삭제 2007/07/15 23:12
      시간이 쌓이다보면 그렇게 되더군요 :-)

      처음 뵙는 분인데, 자주 놀러오세요 :-)
  3. hk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07/07/19 00:33
    시간이 얼마나 더 흘러야 많은 것을 구분할 수 있게 되고
    모든 것에서 자유로워질수 있을까요...
    미련과 기대, 조바심.
    그다지 좋은 것들은 아닌데...
    • 박성용  댓글주소  수정/삭제 2007/07/23 00:38
      시간도 중요하겠지만 어쩌면 마음먹기에 달린 문제가 아닐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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