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조선일보 춘천 마라톤

2007/11/01 21:29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이건 너무하다는 결론 뿐이다. 일주일에 고작 한 번 쉬는 흉부외과 의사에게, 마라톤 의무 지원을 나가라는 건 말이다. 간만의 휴식을 빼앗는다는건 인간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 아닌가. 더욱이, 마라톤 현장에서 흉부외과 의사가 해야하는, 흉부외과 의사만이 할 수 있는 일이 발생한다는 것은 비극이다. 차라리 내과의사나 응급의학과 의사가 필요하면 필요했지, 흉부외과 의사는 아니다. 여튼. 가라고 하니 가야하는게 운명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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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중환자실 환자들만 정리하고, 6시에 춘천으로 향했다. 춘천 운동장에 도착하니 오후 9시가 다 된 시간이었는데, 작은 공설 운동장에 2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꽉 차 있는 모습은 장관이기는 했다. 어쩌면 오늘 재미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예감이 들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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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달리 한 일은 없었고, 마라톤이 시작되기 전에는 참가자들의 혈압을 측정해주는 일을 했다. 다들 긴장을 해서 그런지 전반적으로 혈압이 높게 나오는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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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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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이 시작되고, 구급차를 타고 마라톤 코스를 따라 돌다가, effort angina가 발생한 환자 한 명을 근처 병원으로 후송하고 나니 얼추 시간이 1시간 반이 지났다. 다시 운동장으로 돌아와 시간을 보내니 1등 선수가 들어오고 있었다. 2시간 15분 기록의 케냐 선수였는데, 마치 검은 말 한 마리가 쉬지 않고 뛰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들고간 카메라가 줌이 안 된다는 사실에 무척 안타까웠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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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등 선수의 입장 모습. 우리 나라 선수는 최고 성적이 4위였던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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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구급차가 우리가 타고 다녔던 차량인데, 미국 포드 사의 구급차량으로, 구입가가 1억 5천만원이 넘는다고 했다. 몇 번 구급차를 타 본적이 있었지만, 기존의 깡통차량과는 차원이 틀렸다. 장비만 있다면 나름 꽤 많은 것을 할 수 있을 듯 했다. 하지만 뒷 좌석은 잡을 곳도 없고 운전기사의 운전은 거칠어, 처음 몇 시간 동안은 의료진인 내가 속이 안 좋았고, 어쩔 수 없이 환자가 없을때는 내가 누워있어야 했다. --;

가장 인상적이었던 환자는, 이미 출발 시간이 4시간이 넘은 상황에서 30km 지점에서 쓰러져있는 아주머니였다. 다리에 쥐가 난다며 가지고 있던 바늘로 다리를 하도 찔러서 피가 잔뜩 묻은 채로 꼼짝도 못하고 누워있길래 구급차로 가자니, 어떻게든 완주를 해야 한다며 한사코 구급차를 거부했다. 운동이건 취미 생활이면 즐기며 해야 하는 법인데, 저렇게까지 하면서 이걸 완주해야 하는 건가 싶기도 했고, 저런 모습이 운동 중독이나 일종의 강박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여기서는 말하기 힘든, 나름 피곤하고 짜증나는 일들이 많고, 몇몇 부분에 대해서는 현재까지 유효하지만, 그런 얘기들은 접어두고. 어쩌면 이번 가을, 일 때문에 단풍 구경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덕분에 아직은 설은 단풍이라도 보고 왔으니 그걸로 감사해야 할런지 모르겠다. 하지만 서울에 돌아오니 밤 10시반. 한 주 내내 피곤하다.. 여전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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