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로우맨
2007/05/24 14:00
막상 연극을 보면서는 내용의 부조리함과 잔인함에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사람이 저렇게 잔혹할 수 있을까, 사람이 저렇게 부조리 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극을 다 보고 나오면서 가슴 한 구석이 웬지 모르게 따뜻해짐을 느꼈다. 극적인 반전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모든 죽음에는 그 이유가 있다는 것, 누군가 죽음을 맞이 할때는 그 죽음보다 더 고통스러운 삶이 기다리기 때문에 고통스러운 삶 대신 죽음을 선택했다는 것, '필로우맨'이라는 이타적인 존재가 죽음을 도왔다는 것.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죽음보다 못한 삶이라도 결국에는 죽음 대신 그 고통을 견디어낼 이유가 있었다는 사실. 그 이유가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고 해도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견디어야 할 이유가 되었다는 사실. 이 사실들이 묘하게 가슴을 뜨겁게 만들었다. 그래서 이 연극을 마틴 맥도너의 작품 중 가장 따뜻한 작품이라고들 평하는 모양이다.
문득, 수술 후에 사망한 어제 환자와, 태어나자마자 소아마비로 부모에게서 버려진채로 30년을 살다가 parapneumonic effusion이 생겨 chest tube를 넣고 우리 과로 입원해 있는 환자가 떠올랐다. 모든 죽음에는 그 이유가 있다. 그리고 어떤 삶이라도 다 이유가 있다. 그 죽음과 삶에 대해서는 인간이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
수술 후 멈추지 않는 coagulopathy와 DIC로 사망한 환자에게 DNR permission을 받을때, 부인은 내게 물었다. 제가 동의하는 것이 남편에게 죄 짓는 것은 아니겠지요? 머뭇거리다 단호하게 말했다. 제가 환자라면 부인을 원망하지는 않을겁니다. 나즈막히 부인이 말했다. 예수님, 야고보를 거두어주십시오.
category : Trace of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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